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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대숲

최애의 아이 (推しの子) 감상 분석 (~134화)

by gamma1 2023. 11. 18.

2023.11.18 작성.

2023.11.19 수정.

2023.12.17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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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작 134화까지의 감상과 분석임.

스포일러 주의.

뇌피셜과 의식의 흐름대로 썼고 퇴고도 없어서 이해하기 불편할지도.

 

츠쿠요미의 등장으로 판타지로 흐르는데 저 위에 초월적인 존재가 있고 아이의 죽음이나 고로, 사리나의 환생에 그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고, 무슨 거창한 역할이 있었다는 식의 편의주의식 설정을 붙인다면 지금부터 할 분석의 대부분은 쓰레기통행임.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무책임한 전개는 없길바람.

떡밥의 회수와 엔딩에서 잘 쌓아온 작품의 명성을 한순간에 내팽겨쳐버리는 사례가 너무 많은데 그렇게 끝내기에 이 작품은 많이 아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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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토리는 복수극이지만 독자를 붙잡는 메인 요소는 중간 전환이 있음.

초기에는 범인의 정체이고, 유력한 범인을 밝힌 후로는 호시노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문임.

작가는 끊임없이 과거의 인물과 기록을 등장시키면서 조금씩 호시노 아이가 진정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떡밥을 풀지만 극히 제한적임.

연재물이라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가 진정 묘사하려는건 범인의 정체를 쫓는 추리물, 복수극이 아니라

연예계라는 배경을 빌려서 가정 내에서 버려진, 결핍이 있는 자들의 치료, 재활, 구원이라고 봄.

(개인적으로 카레카노의 시리어스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음.)

 

호시노 아이 역시 마찬가지임.

아마 다큐를 촬영하는 당시만해도 인생과 주변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있었고 자신의 비밀과 과거를 폭로하려는 계획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름.

아쿠아와 루비에게 주려던 DVD에도 그런 내용이 담겼을듯 하고.

아이가 환생하지 못 했다는 발언을 보면 아이는 결핍에서 구원받았단거고 그 계기는 자신의 아이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음.

츠쿠요미의 발언을 보면 죽음의 순간 이미지를 배경으로 워딩은 '호시노 아이의 이야기는 그 때 그 곳에서 완전하게 확실히 끝났어.'이지만

이건 다르게 보면 죽음 직전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게 거짓이 아니라고 느꼈던 그 순간이 구원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름.

아스테리즘 눈동자의 발동은 재능의 개화 정도로 해석되지만 내면의 분노, 결핍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

아이의 사망 직전 아스테리즘이 사라지는걸 보통 사망의 표현으로 보지만 그 순간 분노와 결핍, 컴플렉스가 소멸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이는 쿠로카와 아카네는 연기 중 아스테리즘 발동되지만 아리마 카나는 거의 발동되지 않고 발동되도 아주 약한데

아카네의 연기 방식이 메소드이기때문에 그렇고 아리마 카나는 그런 방식이 아니기때문에 배역 외에 자신의 감정이 일어날때만 일시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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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조연들의 스토리로 빠져나간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듯한데

이 작품을 복수극으로만 본다면 타당한 비판이지만 결핍과 구원이라는 시각에서보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고

그런 비판은 본질을 놓친거임.

배우 역의 많은 인물, 심지어 원작 만화가조차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

이 작품은 그런 인물이 얽히고 설키는 작품이란거 마지막에 크게 터트리기위해 재료를 모으는 사전 작업의 성격으로 봐야함.

 

그런데 희안하게 작중 인물들이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계기 혹은 그 계기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이 아쿠아임.

이건 애초부터 이 작품이 더블 주인공같은게 아닌 아쿠아 단독 주연이었다는걸 보여주는 부분임.

 

보통같으면 이제 구원받은 주변 인물에 의해 구원받으며 끝나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각이 보이지 않음.

고로의 구원은 오로지 아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물론 환생의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함.

그나마 구원해줄 가능성있는게 루비이지만 루비에게서 아이를 겹쳐본다는 소위 근친드립은 현실성이 없음.

아카네를 통해서 유사 아이를 경험했지만 결국 진짜 아니라는 것만 통감했음.

누군가의 대체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닌 것임.

 

그런데 뒤에서 언급할 아이가 살해되기 전 촬영 중이었던 다큐의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이 작품이 선택한 구원의 방식이 결정됨.

다큐가 사실을 폭로하고 주변 인물과 사회에 대한 복수를 목적으로 했다면 다른 주역의 구원도 복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다큐가 아이의 폭로가 주변이 아닌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에 대한 내용이고 이런 자신을 세상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컴플렉스의 극복을 목적으로 했다면 

다른 주역의 구원도 결핍과 컴플렉스의 극복이 구원의 방식일 될거임.

 

그리고 정황상 후자의 가능성이 높음.

 

사실 이 작품엔 복수당해야할 사람이 많음.

텐도지 마리아(사리나의 모친)

아이의 생모

고로의 아버지

아리마 카나의 모친

등등

 

그런데 고로의 혈연은 다 죽고 없음.

복수의 대상이 없는 것임.

도쿄 블레이드편에서 나왔듯이 고로가 구원받는 길은 범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아이가 살아나는 것뿐임.

복수가 구원이 될 수 있다면 아쿠아, 고로는 영화를 통해 다른 이들은 모두 구원해주면서 정작 본인은 끝끝내 구원받지 못 하는거임.

하지만 이 작품에서 다른 사람과 아이를 구원하기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려는 아쿠아에게 시작부터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설정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을거임.

 

고로의 죄책감은 누군가의 죽음을 막지 못 했다는거임.

처음은 사리나였고 그 다음이 아이임.

환생 초기에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함까지 느끼지만 마음 속에 죄책감을 떨치지 못 한 것은 그대로였음.

거기에 아이의 죽음이 결정타를 날린거고.

결국 고로의 구원은 누군가에 대한 복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구한다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

 

전생 커밍아웃을 통해 루비, 아쿠아가 화해한 후 루비는 여기서 더 높은 곳으로 갈거라는 츠쿠요미의 발언을 보면 루비는 최소 아이급의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높음.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이런 식임.

15년의 거짓말 촬영이 8월말 종료 예정.

15년이라는걸 맞춘다면 아이의 기일로 추정되는 12월즈음에 개봉할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연말에 아리마 카나 졸업에 맞춰 B코마치 라이브 투어가 계획되어 있음.

영화로 인해 압박감을 느낀 카미키가 루비의 살해를 시도하고 이걸 아쿠아가 저지함.

아쿠아의 감정을 극대화한다면 (돔 콘서트를 앞두고 아이가 죽었듯이) 아이의 기일이 d-day이고 아이와 비슷한 공간, 방식으로 시도할듯.

고로는 루비에게서 사리나, 아이를 겹쳐보면서 이번엔 구해냈다고 만족하면서 구원을 얻음.

해피엔딩이라면 아쿠아는 죽지 않을거고, 노멀엔딩이라면 아쿠아는 여기서 죽고 영혼의 구원을 얻었으니 다시 환생하는 일 없이 사라질거임.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엔딩이 보는 사람 마음 후벼팔듯.)

 

다만 아쿠아가 죽는다면 아쿠아를 아꼈던 사람들은 다시 상처받고 그들의 결핍에 또 하나가 추가되면서 구원에서 멀어짐.

특히 루비는 안 그래도 자신이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절망하는데 여기서 아쿠아까지 잃는다면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음.

초기 아쿠아의 전략대로 모두에게 미움받다가 혼자 사라지는 길을 끝까지 고수했다면 루비가 상처받지 않고 끝났겠지만 관계가 개선되는 바람에 위태로운 결말로 방향을 틀게 되었음.

츠쿠요미가 거듭해 아쿠아에게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임.

 

 

- 카미키 히카루

현재까지 카미키 히카루가 범인, 흑막으로 나오고 사실 반전이 있다해도 그가 주범을 피해 공범이 되는 정도는 될지 몰라도 범인의 범위를 벗어나기는 어려워보임.

결핍과 구원의 관점으로 보면 카미키도 무언가 결핍이 있는 존재임.

이 작품의 흐름상 아마도 다른 주역처럼 모성결핍일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히메카와 아이리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생긴 것도 그런 모성결핍의 충족을 쫓던 과정의 결과일 수 있음.

 

하지만 최후를 봤을 때 아이리는 전혀 다른 이유로 카미키와 가까워졌을 가능성이 높음.

호시노 아이의 생모, 호시노 아유미가 당시 남자친구가 고작 8,9살된 호시노 아이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꼈다는 발언.

이건 단순히 생모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자기 변호하기위한 과장이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을 높게 봐야함.

아스테리즘 눈동자로 묘사되는 매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아이리도 카미키를 보며 같은 감정을 느꼈을 수 있는 것.

그렇다면 모성을 바랐던 카미키에게서 아이리는 성적 욕망을 추구했고 그 결과 카미키는 결핍의 해소는 커녕 오히려 여성에 대한 혐오, 분노를 갖게 되었을 것임.

 

그런데 그런 여자(아이리)가 남편과 동반자살로 죽게되었음.

그러면 카미키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증오의 대상이 사라져버렸을 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이것이 통해 여성 살해라는 행위 빠져드는 계기가 됐을 것임.

이후 사건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동반자살이라는 것도 카미키의 배후 공작에 의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음.

남편에게 정보를 흘리는 방식으로 충동질해서 살해 혹은 동반자살을 이끌어냈다는 것임.

호시노 아이의 출산 당시 병원 근처에 료스케 외에 1명이 더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아이리의 죽음 당시 현장에 카미키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음.

카타요세 유라 살해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지만 아마 실행자는 따로있고 마지막 순간을 보러왔을거임.

 

카미키의 살인 패턴이 인기 정점에 도달한 여성을 죽인다는 식의 해석이 있는데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라고 봄.

호시노 아이의 출산일 기준 아이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이 절대로 아님.

이것만으로 이미 그런 패턴설은 반박이 됨.

작중 종종 언급하듯이 인기없는 하꼬는 뭘 해도 사회적 영향력이 없음. (잡지사에서 기사로도 안 쓴다는 식으로 묘사.)

하지만 인기가 올라갈수록 영향력이 세지고, 카미키의 약점을 알고있는 인간이 그 사실을 폭로했을 때 파괴력은 하꼬 때와는 비교가 안 됨.

즉, 인기 정점의 여성을 골라 죽이는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압박감이 현실화되는 시점이 그 여성의 인기가 올라왔을 때라서 그렇게 보이는거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출산일에 살해를 시도한게 설명이됨.

살해에 실패했을 때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을텐데 예상 외로 호시노 아이는 아이들의 존재를 숨기고 리스크를 감수한채(카미키와 연락, 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돌 활동을 함.

아이들의 존재가 폭로되지 않을거란 사실에 카미키는 안심했을거임.

그런데 몇년 후 갑자기 애들 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오고, 무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정보망을 통해 들려옴.

(다큐 촬영을 위해 예전 B코마치 멤버들의 인터뷰가 있었을 것이고 B코마치 멤버에까지 정보망이 뻗어있는 카미키는 이를 통해 다큐 제작 정보를 입수했을 것임.)

잊고 있었던 엄청난 압박감이 다시 살아나고 이를 해소하기위해 아이 살해를 사주했다고 볼 수 있음.

카미키는 그저 자신에게 압박, 고통, 혐오을 주는 대상에 대한 감정해소를 살인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인거임.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설립하고 나름 잘 나간다는 묘사가 있는데 회사의 성장도 이런 정보망과 사람의 조종에 의한 것일지도.

 

쿠로카와 아카네가 육교에서 밀려 떨어졌던 것도 단순 행인의 실수로 묘사되지만 정말 죽일 목적으로 카미키 본인이 직접 실행했거나, 누군가를 사주하고 주변에서 죽음의 순간에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봄.

왜 죽이려 했을까.

아카네가 카미키의 존재를 깨닫고 행동, 즉 압박을 가해왔기때문임.

아무리 아카네가 프로파일링을 잘 한다해도 카미키 주변을 파헤치고 다니는걸 카미키가 모를 수가 없음.

그걸 가만히 두는게 오히려 이상함.

 

카타요세 유라의 등장은 단순히 카미키의 싸패성을 보여주는 단편취급받지만 캐스팅 장면(내년 봄 스케줄 시작)이나 유라가 말하는 배역에 대한 설명(원작의 미성년 배역이라는 점)을 보면 15년의 거짓말에 캐스팅된 것일 가능성도 있음.

영화 제작 방해 공작의 첫번째 희생자가 카타요세 유라고 이제 다른 인물들이 위협을 받게되는 시나리오도 가능한 것.

 

 

- 호시노 아이 - 카미키 히카루 관계와 아이의 파괴적 성향.

앞서 분석한 심리에서 아이와 카미키가 만났을 때 둘은 어땠을까.

아스테리즘 눈동자 효과로인해 본능적으로 끌렸을거임.

하지만 극단 내에 카미키를 노리는 여자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경쟁하기위해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을거임.

(카부라기 마사야 발언을 생각하면...)

 

시간 순서를 따져보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카미키가 11세에 아이리가 임신하고, 호시노 아이가 임신했을 때 아이는 16세, 카미키는 15세였음.

그리고 아이리가 자살한게 히메카와 타이키가 5살일 때, 계산해보면 카미키가 16~17세일 때임.

 

그럼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함.

아이리는 라라라이 극단 단원이었고 거기서 카미키를 만나서 아이까지 낳음.

탁란이었지만 아이리와의 관계는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었고 카미키도 그런 관계에 만족하고 있었음.

그런데 호시노 아이가 나타나면서 카미키는 아이에게 끌리고 아이리와의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함.

아이리는 분노에 차서 탁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어쩔줄 몰라하던 카미키를 도와준게 호시노 아이.

이런저런 방법을 알려줘서 동반자살을 이끌어냄.

(어쩌면 아이리의 남편인 우에하라 세이쥬로에게 일부러 접근해서 불륜 이슈를 만들고 부부를 싸우게 만든게 아이일 가능성도...)

이후 아이가 임신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카미키는 반강제적으로 은퇴를 하고 극단 대표 긴다이치 토시로는 트라우마를 갖게됨.

아이의 임신을 카미키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결별을 선언.

아이리를 처리할 때의 경험으로인해 아이에 대해 같은 수를 쓰려고 시도했으나 고로에 의해 실패.

이후 아이의 아이돌 복귀를 보면서 안심함.

이후 얘기는 앞서 언급한대로임.

 

이런 시나리오 하에서라면

카미키 입장에서는 나름 자기입장에서는 아이리를 그렇게 죽이면서까지 아이를 선택했는데 아이는 임신 이후 자신을 버리고 잠적해버림.

아이리를 통해 느꼈을 여성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다시 되살아났을거임.

자신의 결핍은 채워지지 못 한체 심지어 버려지기까지 했던거.

다만 그 때와 다른게 있다면 아이리 때는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방법을 몰랐지만, 아이 때는 방법을 알게됐다는거임.

 

아이리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생기고 5살이 될 때까지 아무런 액션이 없었던건 타이밍을 노렸다기보다는 그 때까지 아이리가 방해되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봐야함.

아이리가 유명 배우라는 사실이 오히려 극단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보장하는 지랫대가 됐을 가능성이 높음.

그런 카미키가 갑자기 싸패로 변한 것은 호시노 아이의 파괴적 행동양식이 이식된 결과일 수 있음.

그리고 아카네는 아이의 파괴적 성향이 좋은 만남에 의해 개선되었다고 보았는데 이는 아이가 카미키의 극단 내 사회 행동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음.

근본적인 개선이 아니라 좋은 샘플을 발견하고 이를 철저하게 모방했던거.

만약 그렇다면 카미키는 어린 나이에 다른 남,여 단원의 다양한 시기, 질투 속에서 살아남기위해 대단히 우호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였을 것임.

그리고 독자는 현재 연재 분의 카미키를 통해 아이의 본모습을 볼 수 있고, 아이를 통해 아이가 본 카미키를 볼 수 있는 것임.

카미키는 타인을 조종해서 타겟을 죽이는 방식을 쓰는데 아마미야 고로에 의해 실패를 맛본 후에도 이를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임.

자신이 범인으로 잡히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건 카미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살인 방식을 떠올릴만한 능력이 없기때문임.

아이에게 제안받은 방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인데 우연한 고로의 살해를 통해 새로운 방식을 습득한 것임.

고로와 비슷하게 죽은게 카타요세 유라인데 시점을 보면 고로의 사체가 발견된 이후임.

즉 그런 방식의 살해 후 시체 유기가 안전한 방식이라는걸 확인하고나서야 그 방식을 쓰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고, 그렇다면 매우 조심스럽고 창의력이 없는 스타일이라는걸 알 수 있음.

 

작중 묘사에 따르면 아이는 친모가 던진 유리잔 조각이 들어간 백미밥을 실수로 먹었다가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하는데

아이의 파괴적 성향과 루비가 보여줬던(아마 아이도 갖고있었을) 상황 유도 능력을 보면 부모에게서 벗어나기위한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음.

유리잔을 던지는 상황을 유도하고 알면서도 밥을 먹은 것.

45510에서 아이가 이 부분을 말할 때 본적 없을 정도로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는데 이건 백미 트라우마의 발로라기보다는 모성을 갈구하던 존재에게서 더 이상 모성을 받을 수 없다는건 깨달은 순간이었기때문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의 감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때문에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기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

(아쿠아나 루비가 연기를 위해 최악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제어가 안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깨달음과 수용의 순간 더 이상 모친은 불필요한 존재가 됐고 벗어나기위해 그런 상황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는 것.

 

 

- 호시노 아이 심리 분석

인간은 개인의 성장 경험을 근거로 타인, 사회를 대하고 소통함.

종합적으로 보면 아이는 일생에서 타인과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기회가 없었음.

성장하면서 소통 방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기회를 박탈당했기때문에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도,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도 전혀 알지 못 했음.

 

모친은 자신에세 무한정의 사랑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시기하면서 이물질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부모의 눈치를 보게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부모가 좋아할만한 아이의 모습, 행동을 하게되는 것.

아카네의 분석 중 청각과 후각이 과민(감각이 민감), 종잡을 수 없는 언동에 반해 완벽주의자 라는 부분은 이런 생존본능의 결과물임.

자신의 생존이 부모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달려있으니 항상 부모의 감정 상태에 안테나가 극단적으로 향해있고

꼬투리잡혀서 혼나지 않기위해 완벽주의에 매달리게 됨.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은 미움받는게 당연하다고 은연 중 여김.

어찌할 수 없는 주변을 탓하기보다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건 학대당한 아동의 흔한 패턴임.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것도 이런 행동패턴의 연장선에 있음.

최초의 타인인 부모와의 관계가 이럴진데 그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먼 다른 사람은 더더욱 두려운 존재임.

부모로 인해 세상이 나를 대하는 기본 자세는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고착화되어있음.

머리로는 그렇지 않다는걸 알고 있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감정임.

그럼에도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자신은 어떻게든 부정적인 세상이 나를 좋아하도록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음.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얼굴, 이름을 외울 정신적 여유가 없었을 것임.

머리 속에는 그저 어떻게 행동해야 이 사람이 나를 좋게볼까.라는 생각이 가득차있고, 감각은 상대방의 반응 캐치에 집중되어있기때문.

소속사 사장의 이름조차 헷갈려했다는건 사장에게도 마음편히 대하지 못 했다는 반증임.

주변의 어른이란 존재들도 딸같이 생각했다는 발언을 하지만 얼마나 허망한 소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패션에 무관심했다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의상 선택에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기때문임.

때문에 타인의 반응이 검증된 옷만 입게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 하는 것.

극단 워크숍 이후 외모에 신경쓰기 시작했다는건 카미키가 아이에게 그런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잘 보이고 싶었던 존재였다는거나 극단 내 다른 여성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는걸 보여주는거임.

 

이런 상태에서 아이돌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들어가게 된 아이가 할 수 있었던건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타인이 원하는 모습, 타인의 반응이 가장 우호적이었던 모습을 연하는 것이였음.

여기서 타인은 팬, 그룹 멤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소속사 사장을 비롯한 모든 타인임. 심지어 자기 자식에게 마저.

그리고 주변을 연기로 대한다는건 아이에게 끝까지 떨쳐낼 수 없는 컴플렉스였음.

 

아카네는 아이의 눈동자를 언급하며 자신감, 채워진 승인욕구를 읽어내지만 절대 그렇지 않음.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의 거짓된 사회화를 이룬 이후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적이 없었을 것임.

그것이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왔기때문에.

하지만 그럴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질 수 밖에 없음.

비밀주의와 폭로욕구라는 어찌보면 정 반대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지 못 했던 경험때문에 이를 드러내는걸 두려워하면서 숨기려했던게 비밀주의로 포장되고,

반대로 그런 자신을 드러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을 것임. (폭로욕구)

 

무심함(대범함)과 과도한 집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됨.

이런 성향은 기본적으로 세상 일을 냉소적으로 바라봄.

거기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가까운 지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적절히 리액션해주지 못하니 무심해 보이고

자신에게 (남들이 보기에) 큰 일이 나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자신이 느끼기에) 자신에게 과도한 관심이 쏠리는 것을 못 견뎌함.

적절한 리액션에 대한 부담이 너무나 크기때문임.

때문에 불편한 이슈가 나오면 별 것 아닌척, 잊고 있었던척, 관심없는척 하면서 빨리 이 이슈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이는 주변에 대범함으로 비춰짐.

한편으로는 누군가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때문에 자신이 가깝다고 느끼는 대상과 거리감을 지키지 못 하고 과도하게 가까워지고, 흥미있는 주제에 대해 대화하게되면 말이 많아짐.

경우에 따라 이게 집착처럼 보일 수 있음.

 

아이의 자기 평가는 항상 박했을거임.

항상 이상한 소리를 하고 실수해서 커뮤니케이션을 망치는 것 같은 자신, 상대방의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신.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도 감히 실행하지 못 하고 상대방이 자신에 대한 애정을 먼저 적극적으로 보여야,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게 직접적으로 강해게 느껴져야 안심하고 애정을 표현할 수 있음.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자신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발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임.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사랑에 대한 불신이 항상 박혀있음.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이라는 모성애를 부정당한 사람이 어떻게 사랑이란 존재를 믿을 수 있겠음.

 

영유아기 비정상적인 부모-자식 관계, 부모 관계를 보면서 부부라는 관계,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정착됐을 것이고 이는 45510에서 결혼 희망에 대한 부정 즉답으로 드러남.

 

작 중에는 아이의 출산결심이 상당히 가볍게 그려지지만 사실 굉장히 진지했을 것임.

타인을 항상 가면을 쓰고 대하고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해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아이들을 제대로 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임.

실제 맞닥들이기 전까지 이런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아이조차 타인에 불과함.

그리고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지우지 않은건, 아이를 지우는 자신에게서 자신을 버린 엄마의 모습을 겹쳐보았기때문임.

자신은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다, 자신같은 인생을 또 만들지 않겠다는 원념에 가까운 생각이 서려있는거임.

그리고 이는 아이가 모친의 행동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게 옳다고 인정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은 상태라는 것임.

용서하지 않은 것.

 

아이의 인생은 크게보면 끊임없는 애정 갈구와 끊임없는 좌절로 점철되어 있음.

자신은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했는데 끝끝내 그것이 좌절되었을 사람은 어떤 감정을 품게될까.

어찌할 수 없는 분노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 자신은 애정을 표해왔는데 시기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이런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한편으로는 세상에 맞추지 못해 사랑받지 못 하는 자신, 커뮤니케이션이 어설픈 자신을 향한 분노.

하지만 그런 분노를 결코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성격.

아이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가면, 연기의 심층에 분노가 있다는건 그런 맥락임.

 

사장이 말한 거짓말이 언젠가 진짜가 될거란 말 하나에 의지해 버텼을지도 모름.

아이돌 생활을 거치면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걸 깨달았겠지만 인정하지 못 했을거임.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영원히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 되기때문임.

그래서 죽음 직전의 진짜 사랑이라는걸 인지한 순간이 중요한 것이고 하필 그 순간이 죽음 직전이었다는 것이 아이 개인의 비극임.

사장이 아이 사후 잠적해버린 것도 아이를 스카우트 할 때 자신이 했던 말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뒤늦게 깨달았기때문일 수 있음.

 

아이가 다큐에 진짜 자신을 촬영한건 그동안의 시도에 대한 좌절, 분노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마지막 발버둥일 수 있음.

하지만 모든걸 폭로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주변을 파멸시키겠다는 선언으로 보기는 어려움.

오히려 파괴적 성향이 자신을 향했을 가능성이 높음.

(아이의 성격상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다는건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게 파괴될 수도 있는 모험임.

만약 이 시도의 결말이 세상의 거부, 부정이라면 아이는 자기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게됨.

자신의 파괴 리스크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것.)

그래서 아쿠아가 본 DVD에 나온 '난 널 사랑할 수 없어.' 라는건 카미키에게 '너가 바라는 여성이 되어줄 수 없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아이 자신을 향한 말일 가능성도 있는 것.

DVD의 내용도 무슨 대단한 폭로와 복수를 바란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신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자기 고백,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서 결판을 보겠다는 결심을 전하는 내용일 수 있음.

그래서 어른이 된 너희들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아쿠아는 영화 제작 개시를 놓고 아이의 진짜 바람을 이루어주겠다고 했는데, 아이의 바람이라는게 뭔지 근원적으로 파고들어가면 누군가의 파멸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인정받는 세계임.

 

(2023.12.17 추가)

소설 샛별의 스피카를 보면 아이는 자신을 시기, 질투하는 B코마치 멤버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곤란해하다가 아이돌 은퇴를 결심함.

하지만 이후 팬의 사랑을 인식하고 마음을 바꿔 그런 멤버조차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게됨.

이치고 사장은 아이돌로서의 마음가짐 정도로 생각해서 아이의 생각을 긍정하지만 실상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는게 문제임.

 

아이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팬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서 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을 얻은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만인에게 사랑받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음.

이걸 모르는건 (아카네가 분석했던) 발달장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영유아기에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기때문임.

열악한 영유아기 가정환경으로 인해 아이에게 있어 사랑(긍정적인 리액션)은 당연히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노력에 따른 결과물의 성격을 띠게됨.

가정 학대의 특성상 비슷한 행동을 해도 부모가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반응했을 것이기때문에 사랑받을 수 있는 기준을 알 수 없다는건 아이에게 혼란을 가져오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신뢰,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됨.

 

세상에 이유없는 사랑이 있다는걸 알아야 이유없는 다양한 감정, 증오도 있다는걸 알 수 있는데 사랑부터 조건부였으니 자신이 받는 증오도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는 것.

결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위해 끝없는 노력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했을 것임.

 

애니 오프닝 가사 중 아이는 자신을 마리아라고 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출산사실이나 친부를 숨긴데서 처녀수태를 연상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상대를 가리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는 표현임.

 

 

- 2023.11.23 등장인물의 연예활동 동기

호시노 아이 : 사랑의 확인, 인정욕구의 해소

루비 : (아이에 대한) 동경

아쿠아 : 복수

아리마 카나 : 인정욕구

MEM쵸 : (아이돌에 대한) 동경

쿠라카와 아카네 : (아리마에 대한) 동경

 

이들이 왜 연예활동을 이어가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한데 묘사의 부족인지, 연예생활도 결국 밥벌이라는 현실고증인지 동기는 사라지고 관성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만 묘사됨.

연예활동에 대한 회의나 내적 갈등도 근본적인게 아니라 이상과 엇나가는 현실의 방향성이나 실력부족, 경쟁심을 다루는데 그침.

 

아이와 카나의 동기는 상당히 유사함.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수단으로 연기, 연예활동과 그에 따른 인간관계를 선택했음.

사실 이건 위험한 방식인데 카나의 과거를 언급할 때마다 나오듯이 수시로 안티의 악플에 노출되는건 당연히 데미지고 인기가 떨어지면서 언급이 안 되면 그것만으로도 인정욕구의 좌절임.

절대 인정욕구가 충족될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한 것임.

아이가 그나마 아이들(자식들)을 통해 동기를 이루어냈듯이 승인욕구는 외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 능력치로 충족할 수 있는게 아님.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가 쌓여가면서 충족되는 것임.

이런 측면에서 카나는 상당히 불안정하고 위험한 단계고 그런 모습이 작중에 지속적으로 묘사되고 있음.

 

동기 중 가장 이질적인 것은 아쿠아인데 연예활동은 복수에 필요한 도구를 모으기위해, 인맥구축의 수단으로 해석해주는게 최선임.

그런데 이마저도 오락가락함.

마음 한 편으로 이런 악역을 하고싶지 않고 자신의 행복만을 쫓고 싶어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죄책감때문에 복수를 놓지 못 하고 있음.

즉 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고 있으면서 죄책감을 누그러뜨리기위해 이것도 복수 준비의 일환이라고 자기합리화하고 있는 것임.

이런 심리상태라면 복수의 과정에서 자신이 도구라고 합리화했던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는 순간 완전히 멘탈이 무너져내리면서 망가지고 모든걸 놓아버리거나, 완전히 흑화해서 복수에 미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음.

그런데 아쿠아(고로)의 다친다는 기준이 매우 낮다는게 문제임.

카나 스캔들을 묻어버리기위해 아이의 비밀을 폭로했는데, 아무리 때마침 조건이 갖춰졌다지만 그걸 그렇게 터트린다는건

그만큼 자기와 엮인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렬하다는 반증이기도함.

결국 당연히 영화와 관련해서 아쿠아의 멘탈을 박살내는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임.

그리고 이를 어떻게, 누구의 도움으로 극복하느냐가 결말의 분수령이 될 것임.

 

개인적으로는 불안정한 둘이 상호보완하는 엔딩이 깔끔하다고 보는데 (스캔들 묻어버린거에 대한 보은이란 핑계거리도 있고) 에바 신극장판에서 거하게 배반당한 경험이 있어서 크리에이터라는 놈들이 뭐 대단히 참신한 시도라도 하는양 착각하면서 클리셰 뒤틀기를 시도할거 같아서 불안함.

 

 

-23.12.16. 커플링? 아쿠아의 인간관계?

스토리작가인 아카사카 아카는 트윗에서 '쿠로카와 아카네는 데리고 가는 아이, 아리마 카나는 데리고 (돌아)오는 아이.'라고 언급.

작 중(도쿄 블레이드편) 아쿠아는 독백에서 카나를 빛, 아카네를 이해자로 표현함.

 

-아카네

작 중 아카네는 자기 주도적인 방향으로 아쿠아를 이끄는게 아니라 아쿠아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려고 함.

자기가 오명을 쓰고 잘못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직품 외적으로 다소 작위적인 형태가 되었지만) 그 덕에 아쿠아는 엄청나게 빠르게 복수 대상을 특정할 수 있게 되었고 복수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음.

그리고 프로파일링 능력 덕에 아쿠아의 심리나 배경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면서 최고의 이해자가 되었음.

둘이 연인이었다는 점을 빼고봐도 아쿠아의 내밀한 부분까지 공유한 인물은 아카네가 유일함.

루비, 미야코 모두 가족이라지만 이 정도 수준에 이르지는 못 했음.

 

하지만 아쿠아가 바라는 결말을 함께 만들고 책임도 함께 지겠다는 아카네의 방식은 일견 대단한 자기희생으로 보이지만,

실상 고통스러운 복수에서 벗어나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어하고, 자기 주변인의 고통, 희생을 바라지 않는 아쿠아에게 있어서 이런 아카네의 방식은 아쿠아의 트라우마 해소,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역효과만 일으킴.

그걸 보여주는게 자신은 결국 아쿠아를 구하지 못 했다는 아카네의 발언, 아카네와 자꾸 결별하려는 아쿠아의 태도임.

단적으로 생각해도 누군가를 죽이기위해 연예활동을 한다는데 같이 죽여주겠다는 인간은 아쿠아가 원하는 평범함과 거리가 먼 인간임.

 

 

-카나

데리고 가는 아이와 데리고 오는 아이가 있다는건 데리고 간 곳(복수)에 진정한 구원이 없다는 의미임.

복수를 향해 갔다가 결국 그 곳(것)에서 벗어나야 트라우마의 해소와 구원이 달성되는 것.

 

사실 작 중 카나의 취급은 매우 안 좋음.

작품 외적으로 접근하면 이건 장기 연재물의 한계이자 고질병인데 독자의 흥미를 놓치지 않기위해서는 갈등, 돌발변수에 의한 긴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함.

이를 치밀한 서술이나 떡밥을 통해 유지할 수 있다면 초일류겠지만, 생각보다 흔한 방식이 어그로 캐릭터를 고정으로 박아놓고 수시로 활용하는 것임.

(예를 들면 일일드라마에서 지적장애인을 등장시켜 중요 시점마다 돌발 행동으로 갈등과 우연을 만드는 것.)

이 작품에서는 카나가 그 역할이 되어버렸음.

입이 험하고 자존감이 낮다는 캐릭터성을 못 박아놓고 아쿠아와 가까워질만하면 말실수를 만들어서 기회를 날리면서 욕먹는 포지션으로 세워놨고, 그 정점이 스캔들편이었음.

지금 연재 중인 영화편에서도 악행은 카나가 다 뒤집어쓰고 있고.

(여담으로 작 중 지속적으로 마치 메소드 연기가 연기방법의 최고봉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같은 의도로 보임.

영화 내용상 부정적인 감정이 주가 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을 발생시키고 싶은데, 이미 거의 고정돼버린 캐릭터들의 성격상 잘 지내고 있던 캐릭터 사이에 갑자기 갈등이 생기는건 무리가 있으니까 이를 합리화하기위해서 연기를 위한 지나친 감정이입이 있는게 당연하다고 정당화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런데 그런 작 중 대접과는 별개로 아쿠아는 카나를 매우 아끼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묘사됨.

카나의 입버릇에 상처받으면서도 데뷔무대를 위해 삐에용으로 위장하기까지 한 것.(+첫 무대에서의 오타게)

아이 사망의 트라우마를 카나에게 겹쳐보이면서 필요 이상으로 접촉을 꺼리는 행동.

복수를 위해 주변인 누구든 다 써먹어주겠다는 자기 기만 속에서도 카나는 그 대상에서 한발자국 벗어나있음.

아무리 타이밍이 좋았다해도 스캔들을 덮으려고 자신과 아이의 치부까지 까발린 것. 등등

 

내가 오명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카나가 상처받거나 무너지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고 지켜주겠다는 의지가 보임.

이는 단순히 사랑이나 호의 정도로 설명하기 어렵고, 이전 고로가 아이를 향해 품었던 우상, 즉 아이돌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임.

아이돌 첫 무대에서 카나는 아쿠아를 향해 최애선언을 했는데 이후 딱히 아쿠아가 카나에게 애정표현을 한적도 없었고, 그 상태에서 아이돌 은퇴선언까지 하니 최애선언은 비회수 떡밥취급을 받는데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을뿐 아쿠아의 심리상 최애는 이미 카나로 되어있음.

 

혹은 카나는 아쿠아에게 있어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평범한 일상의 상징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음.

캐치볼을 하면서 아카네에 대한 감정을 검토한다든가, 카나와 이야기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 사망 이전의 모습이 나온다든가 한다는건 카나를 상대할 때만큼은 복수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거임.

그렇기때문에 자신을 그런 상태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절대 잃을 수 없다는 강박이 생기는 것임.

 

즉 어느 쪽이든 현 시점에서 아리마 카나는 아쿠아의 동경 혹은 지향점 - 빛인거임.

 

 

- 커플링?

기본적으로 아쿠아의 구원의 최고방법은 아이의 부활이겠지만 이는 츠쿠요미의 발언을 비롯해서 지속적으로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고 밝히고있음.

하지만 최소한 아쿠아 구원의 주체가 동경의 대상이어야된다는건 분명해보임.

 

아카네는 누군가 답을 제시하면 그 답까지의 과정을 함께 해주고 심지어 대신해줄 수도 있는 사람임.

이건 누군가 바라는 모습, 예시, 배경정보가 없으면 연기에 곤란함을 겪는 모습에서도 드러남.

아쿠아가 어떻게 해달라고하면 기꺼이 그에 맞춰줄 수 있지만 아쿠아가 모르는 방법은 먼저 제시하면서 이끌 수는 없는 것임.

생의 의미를 찾기 못 해 복수에 매달리고 있는 아쿠아가 자신을 구원할 방법을 먼저 제시할 수 있을리 없고

그렇기때문에 아카네가 아쿠아를 구원할 가능성은 극히 낮음.

 

지금까지 아쿠아는 복수의 준비로 인해 멘탈이 부서진 상태이고 복수가 본격화되면 될수록 아쿠아는 더더욱 망가질거임.

영화에서 아쿠아는 카미키 역을 맡았는데 그 놈의 메소드 타령이 이어진다면 카미키의 악행과 심리에 이입될수록 아쿠아 본래 성격과의 괴리에 고통받을 것이기때문임.

(소설을 보면 아쿠아(고로)의 멘탈은 상상 이상으로 약한데, 특히 소중한 사람의 상실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 취약함.)

복수가 성공한다한들 이런 상태에서 아쿠아의 구원따위 있을 수가 없고, 이 상태에서 아쿠아를 끄집어내고 복수 외에 다른 삶의 이유를 찾아주고 트라우마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함.

여기서 카나가 데려오는 아이라는 얘기를 겹쳐보임.

 

결국 아쿠아의 구원은 카나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문제는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묘사가 거의 없다는 것임.

아쿠아에 대한 카나의 적극적인 개입, 카나에 대한 감정을 아쿠아가 깨닫는 장면 등이 필요한데 이걸 서술트릭이나 반전이랍시고 막판에 우르르 쏟아내면 억지 커플링같은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음.

앞서 언급했듯 아카네가 아쿠아의 심리, 행적이 깊숙히 발 디디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소위 정실취급하는 여론이 있기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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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나는게 있거나 생각이 바뀌면 이후 추가될지도